“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 2016년 영화 “터널”
영화 속 대사가 이렇게 마음에 와닿는 적이 없었다.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로도 모자라서 또 다시 무너진 대한민국의 안전은, 이번에는 무안공항에서 승무원을 포함한 179명의 목숨을 너무나도 허망하게 앗아갔다.1
이 참사에 대해서는 원인이 아직 조사되지 않았고, 때문에 버드 스트라이크다, 엔진 고장이다 등 다양한 출처 미확인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다만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들, 인터넷 전문가가 아닌 실제 학자, 관련 종사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합해봤을 때, 이 사고가 “제주항공 참사”로 불려야 할지, “무안공항 참사”로 불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후자에 의견이 좀 쏠려있다.
무안공항은 어떤 곳인가?
이름 그대로 전남 무안에 있는 무안공항은 2007년 개항한 공항으로, 17년 동안 정기 국제노선이 없다가 생긴 지 한 달도 안 돼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다.

무안공항은 원래 2008년부터 광주공항에 있는 제1전투비행단을 그리로 옮기는 쪽으로, 즉 군공항을 옮기는 쪽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있었다’인 이유는 그 후로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군공항은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안군 측에서 세금까지 투입해가면서 이런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2 그런 관계로 제1전투비행단은 여전히 광주공항에 있다. 단, 훈련항공기들이 무안공항을 자주 이용하기는 한다.
그런데 훈련항공기들이 공항을 자주 이용할 수 있다는 말도 딱히 좋은 뜻이 아니다. 민간공항밖에 없는 곳에서 훈련항공기들이 공항을 제 집처럼 쌩쌩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그 공항에서 애초부터 민간 항공기가 잘 안 뜬다는 의미다.
군 공항도 없고 순수하게 민간 여행을 목적으로 지어진 공항에서 민간 항공기가 잘 안 뜬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애초부터 차로 40분도 안 걸리는 거리3에 광주공항이 있는데, 또 민간공항을 짓는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경기도 시흥시를 예로 들면, 시흥시청 기준으로 거기서 가장 가까운 인천국제공항이 차로 34분 거리4다. 경기도 시흥시에 시흥공항이 있다고 하면 과연 그게 이해가 되는 상황일까?
오송역이 생각난다면 그거 맞다. 오송역이 급행버스도 제대로 안 다니는 오지에 무려 폭탄 테러 협박5까지 하면서 억지로 만들어진 지역이기주의 끝판왕 괴물인 것처럼, 무안공항도 무안군의 민간공항 핌피현상 + 군공항 님비현상이 합쳐져서 탄생한 괴물이다.
무안공항은 안전한 공항인가?
사람이 없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인력의 문제와 경제의 침체를 가져온다. 당연한 말이다. 군인들 돈을 떼먹던 양구군의 경우가 딱 그렇다. 2사단이 해체되자마자 지역 상권 자체가 주저앉았다.6
아무리 요즘 인건비 절약을 위해 무인상점, 무인호텔 같은 게 늘고 있다고는 해도, 무인공항이라고 하면 미쳤냐며 질겁하지 않을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보안, 방문객 응대, 활주로 업무, 기타 등등 해서 공항에는 필요한 인력이 한두 명이 아니다.
또 군생활을 BAT반에서 해봤다면 익숙하겠지만, 새는 어디에든 있다. 그게 공항이어도 새가 “아 공항이구나” 하고 알아서 피해갈 리가 없다. 그리고 새가 비행기랑 충돌하거나, 비행기 엔진에 빨려들어가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걸 막기 위해 종일 사이렌 울리고, 폭음탄 쏘고, 하면서 새들을 쫓아낸다.

무안공항은 일단 동서남북 4방향이 전부 조류 서식지이다. 아무리 새가 어디에든 있다고 한들, 그게 조류 서식지에다가도 공항을 지어서 버드 스트라이크 확률을 올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부지 선정 상 어쩔 수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최소한 그 새들을 쫓아낼 팀이라도 열성적으로 운용했어야 했다.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르면 조류 퇴치 전담 인원은 최소 4명, 연간 항공기 운항횟수가 5,000회 미만이면 최소 2명은 확보해둬야 한다. 무안공항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니만큼 후자에 해당돼서 2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고 당일 무안공항에서 근무 중이었던 조류 퇴치 전담 인원은 1명7이었다. 최소한의 규정조차 어기고 무안공항이 아니라 무인공항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인의 인건비는 기름값보다 싸다는 말처럼 군 BAT반 같은 걸 운용했어야 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무안공항에 들어올 공군 BAT반은 되도 않는 님비현상으로 인해 아직 광주의 1전비에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건 자연재해가 아니다.
콘크리트 벽이 왜 공항 활주로에?

그리고 이번 참사에서 승객 전원 사망 (승무원 제외)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구조물이 하나 있는데, 공항 활주로 끝에 있는 정체불명의 콘크리트 벽이다.

처참하게 파괴되기 이전의 사진이다. 로컬라이저 안테나인데, 활주로 반대편 끝 300m 이내 지점에 설치되어야 하며, 항공기가 착륙하면서 접근할 때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안테나는 콘크리트를 타설해서 만든 벽을 흙으로 덮은 둔덕에 올라간 괴상한 형태로 되어있다.

당장 구글에 Localizer antenna로 검색만 해봐도, 이 따위로 설치해놓은 사진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All such equipment and their supports shall be frangible and mounted as low as possible to ensure that impact will not result in loss of control of the aircraft.
– Doc 9157, Aerodrome Design Manual
그리고 애초에 항공기 운항경로와 근접한 지점에 설치되는 모든 항행안전시설은 “frangible”, 쉽게 파괴될 수 있도록, 그리고 가능한 한 낮은 위치에 설계/장착되어야 한다고 매뉴얼과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운전하다가 뭔가에 충돌했을 때, 그게 (사고 당사자에게는 매우 유감스럽지만) 사람인 경우와, 시멘트를 발라 만든 단단한 벽인 경우에, 운전자와 차체에 가해지는 충격의 강도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 벽은 사람과 다르게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안공항의 안테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나온 다른 안테나와 다르게 낮은 위치에 있지도 않다. 대체 왜 설계를 이 따위로 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고가 난 기종과 같은 기종을 운행했던 한 파일럿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 사건을 다룬 영상을 올리면서, “…but again, here you can see the wall where the localizer antenna is mounted. It is absolutely huge, I don’t know who designed that but it’s too much…”라고 했다. 파일럿이 봐도 누가 이걸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크고, 높게 설계되어 있는 구조물이라는 거다.
영국 SKY News에서도 이 참사에 대한 기사를 두 차례 정도 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항공안전 담당 편집자인 David Learmount라는 사람이 나와서, “The aeroplane was fine up until the point it hit the wall. If there had been no wall there, everybody would be alive now.”. 즉 거기 애초에 콘크리트 벽이 없었다면 승객들은 모두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기사에서도 똑같은 사람이 나와서는, 이런 걸 본 적이 없다면서, “awful”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해가면서 왜 저기에 콘크리트 벽을 놨냐며 강하게 비판을 했다.
실제로 위성 사진에서 콘크리트 벽 뒤를 보면 광활한 논밭이 펼쳐져 있어서, 콘크리트 벽에 충돌하지 않고 쭉 동체착륙을 시도했었으면 승객 대부분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람이 만든 인재
때문에 무안공항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맞는다고 해도 담당할 인원이 1명뿐이었으며, 그 외 다른 게 원인이라고 해도 “콘크리트 벽만 없었으면”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여파로 인해 제주항공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고8, LCC 전반에 아마 불똥이 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는 말이 있다. 1건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또 29건의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300건의 징후가 반드시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도 있다. 이런 참사를 29건 중 하나로 삼게 될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