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정신병자가 부정선거가 있다고 믿고 저지른 이상한 짓 때문에 21대 대선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29일과 30일 양일 사전투표가 있었는데, 29일에는 투표하고, 30일에는 참관을 해봤다.
계기 및 신청
나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안 보면 사실 투표 절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기로 했다. 물론 참관인에게 참관 수당을 주는 것도 이유에 있긴 있었다.

참관인은 특정 정당 소속과 무소속으로 나뉘고 정당별로 최소 한 명씩 신청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예를 들어 대선의 경우 후보를 낸 모든 정당에서 각각 참관인을 보내야 공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신청 방법은 특정 정당 소속으로 신청하려는 경우와 아닌 경우, 전자면 또 어떤 정당 소속으로 신청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나는 개혁신당 당적을 가지고 있는데 개혁신당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대놓고 신청을 받고 있었다. 소속/무소속 여부 관계없이 참관인은 오전/오후로 신청할 수 있고 오전은 5시 ~ 12시, 오후는 12시 ~ 18시이다.

뭐 어떻게 신청을 하건 최종적으로는 명단이 선관위로 넘어가기 때문에 그 지역의 관할 주민센터에서 하루~이틀 전 즈음 전화나 문자로 연락이 온다. 나 같은 경우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아닌 곳에 신청을 넣어서 확인 차 전화를 건 것 같은데, 오전의 경우 05시까지, 오후의 경우 11시 30분까지 사전투표장으로 오라고 한다.
만약에 그날 벼락을 맞을 것 같아서 등의 사유로 못 가는 경우 그냥 못 간다고 하든지 당일에 불참해버려도 된다. 그렇게 되면 신청하고 싶은데 자리 차서 신청을 못 한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민폐가 되겠지만..
사전투표소 방문

사전투표소에 방문하는 사람은 보통 투표를 하러 온 사람으로 취급이 될 테니 들어가면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여기(관내)인지 아닌지(관외) 물어보는데.. 당당히 참관인으로 왔다고 하면 이렇게 매고 다니는 명찰을 하나 주고 참관인 자리로 안내한다. 전날 투표를 미리 했어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하는 심정으로 앉아있었다.
특이한 점은, 오전 타임 참관인들과 교대할 때도 느꼈지만 참관인이 죄다 여자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래서 오후엔 나 혼자 남자고 나머지가 전부 여자였다. 같은 성별이면 공감대 형성을 위한 대화라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여자만 보면 움츠러드는 성격 탓에 굉장히 어색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관인 업무(??) 진행
오전 참관인들과 교대한 시간이 11시 30분이었는데, 12시에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오후 참관인들끼리도 교대를 한다. 점심 시간은 1시간이고, 같은 정당에서 2명 온 경우에는 1명이 반드시 남아있어야 한다. 오후에 개혁신당 소속 참관인은 나밖에 없었는데 이런 경우엔 그냥 갔다 오면 된다.

밥 먹고 왔는데, 그래서 참관인이 뭘 하나요? 라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안 한다.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한다. 신분 확인 및 용지 인쇄는 사무원(공무원)이 하고, 투표는 유권자가 하고, 이름답게 참관인이 뭔가 과정에 개입할 여지 자체가 없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6시간동안 사람들이 투표하는 걸 보고 있으면 된다.
물론 극악의 확률로 같은 사람이 두 번 투표하려고 한다든지, 기표소에 들어갔는데 찰칵 소리가 난다든지, 뭐 이런 불법 행위를 적발했다면 사무원에게 버스터콜을 칠 수 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사무원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실제로 난 이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궁금한 거 몇 가지를 물어봤고 굉장히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직접 말을 걸 수는 없고, 병풍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존재가 참관인이다.
“주소지가 이쪽 맞으신가요?” —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 “여기 지문 한 번 찍어주세요” — “투표용지 드릴게요” — “기표소에 들어가서 투표하시고 함에 넣으시면 됩니다” — “투표지 한 번 접어주세요” (관내) or “봉투 밀봉상태 확인해주세요” (관외) — “감사합니다” 로 끝나는 사무원의 목소리를 투표 종료시까지 듣고 있으면 참관인의 업무를 잘 하고 있는 거다.
폰 볼 수 있다. 몇 분을 봐도 사무원이 제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에서 투표를 하고 있는데 참관인으로 앉아서 폰만 보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눈치껏 투표하는 사람이 적거나 없을 때, 한 번에 최대 10분 정도만 사용하는 걸로 내면적 합의를 봤다.
화장실 갈 수 있다. 점심시간과 동일하게 교대를 하든, 혼자 왔으면 혼자 갔다오든 하면 된다. 물론 갔다 튀는 건 상놈의 새끼다. 실제로 튄 사람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경기 종료
그럼 참관인이 왜 있는 거에요? 라고 할 수 있는데.. 사전투표가 끝나고 나면 왜 불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절차가 종료되고 나면 전산에 등록된 관외사전투표 수와 실제로 투표함 까뒤집어서 나온 회송용 봉투 수가 일치하는지 수작업으로 다 센다. 관내투표는 회송용 봉투 없이 행낭에 용지만 담기는데, 이걸 깐다는 건 사전 개표를 하는 게 되므로 절대 안 되고 관외만 한다.
선거가 모두 끝나자마자 사무원 분께서 전산에 등록된 참여자 수를 확인시켜준 후 관외투표함의 봉인지를 뜯고, 내용물을 우르르 쏟았다. 특수봉인지여서 제거하는 순간 워터마크가 남았다.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REMOVED였던 것 같다.
쏟아진 봉투들을 참관인들이 각자 정리하고, 개수를 세고, 이걸 다 합쳐서 50개 단위로 묶었다. 당연히 전산에 등록된 것과 단 한 개의 오차 없이 일치했다. 불일치했으면 무슨 대재앙이 벌어졌을지 별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분류된 회송용 봉투들을 별도의 박스에 담고, 여기에도 봉인용 특수 테이프를 상하좌우 다 붙였다. 그 위에 도장까지 찍히므로 훼손되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렇게 관외투표 이송 준비는 다 끝났다.
다음은 관내투표 차례다. 관외투표함과 동일하게 입구 접합부에 특수봉인지가 부착되어 있고 그 위에는 오전 참관인들의 서명이 들어가있다. 물론 이걸 까서 뒤집을 수는 당연히 없고, 누가 투표 종료 후 투표용지를 추가적으로 투입하는 걸 막기 위해 위쪽에 볼트로 추가 잠금장치를 건다.
그 위에 특수봉인지를 부착하고 참관인 5명이 각자 서명을 했다. 이 과정을 각자 다른 당(또는 무소속) 소속의 사람들이 전부 지켜봤고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라는 의미에서 참관인을 부르는 거였다. 사실 실제로 참관인은 7명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2명씩 와서 정당별 1명만 서명했다. 그렇다고 더 온 사람들이 바로 집에 간 건 아니고 전부 지켜보고는 있었다.
그 다음은 투표용지 프린터와 관리용 랩탑이다. 총 6대가 있어서 6장의 특수봉인지가 사용되었고 당연히 여기도 5명의 서명이 각자 다 들어갔다. 특수봉인지는 프린터의 경우 조작 패널에, 관리용 랩탑의 경우 아예 열지를 못하게 윗면과 아랫면을 이어서 붙인다.
봉인은 다 끝났고, 이제 관내사전투표는 지역 선관위로, 관외사전투표는 지역 우체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할 차례다. 이송확인서 2장이 있는데 여기에도 참관인들이 전부 서명한다. 참관인으로 신청하면 하루에 자기 서명을 10번 정도 써볼 수 있다.
투표함 이송은 사무원과 참관인이 다 같이 가는데, 이송용 버스가 별도로 온다. 안에는 다른 선거구의 투표함, 참관인, 사무원, 그리고 경찰이 탄다. 어디를 먼저 가는지 정해진 절차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체국에 먼저 가고 선관위에 나중에 갔다.
우체국에서는 참관인 3명만 내리면 된다고 해서 아쉽게도 못 내렸고, 선관위에서는 전부 다 내려야 해서 내렸는데.. 도착하자마자 웬 유튜버들이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수당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전국에 얼굴 팔리는 대가로는 그다지 적절한 금액은 아니다. 마스크라도 쓰고 올 걸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스크를 썼었는데, 이송 간다는 걸 생각을 못 해서 투표 끝나고 버렸다. 버리지 말 걸..

지역 선관위는 이렇게 생겼다.
선관위 내부로 투표함 낑낑 들고 가면 인수절차를 거치고, 관내투표함은 행낭째로 별도의 창고에 집어넣는다. 이 과정은 CCTV로 실시간 참관할 수 있다. 여기까지 했으면 드디어 참관인 업무(??)는 끝이다.
돈

일부러 글의 맨 끝에 썼지만 수당은 실제로는 사전투표 절차가 종료되는 18시에 받는다. 여기에 참관원은 실제로 7명이었지만 이송작업에는 정당별 1명씩 5명이 함께했는데, 이 5명에게는 2만원의 여비가 계좌이체로 1영업일쯤 이후에 추가지급된다. 그래서 나는 총 13만 8천원을 받는 게 된다.
6시간 (이송 참관은 +1시간)쯤 앉아있는 대가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으나, 얼굴이 팔리는 대가로는 음.. 높은 건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