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찾기 — 이게 왜 니 폰이야

나의 찾기라는 애플에서 출시한 기능이 있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13년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비스가 안 되다가, 혁신의 애플(쑻)답게 iOS 18.4 개발자 베타 3부터 사실상 완전한 사용이 가능해졌다. 내가 굳이 시간 버려가며 직구를 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 때문이다.

이 기능이 베타에서 사용 가능해지자마자 실제로 사용하는 걸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이 자전거만 빼고 안 훔쳐가는 나라라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내 에어팟이

사실 내 건 아니고, 친구의 에어팟이 올해 1월 19일에 없어졌다.

사라졌어요
사라졌어요

얘기를 하자면 좀 긴데 아무튼 버스를 타다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대로변에 떨어뜨린 걸 차가 밟고 지나가서 평탄화(물리) 작업이 되지 않았겠나 싶었는데, 아무튼 인지했을 때 가장 먼저 할 건 분실 모드 활성화 및 분실물 신고이다.

나의 찾기에서 분실 모드를 활성화한 기기
나의 찾기에서 분실 모드를 활성화한 기기

분실 모드를 활성화하면 나의 찾기에서는 이렇게 물음표 표시가 뜨고, 애플 기기로 연결하면 분실 기기라고 사방팔방 경고를 띄워댄다. 안타깝게도 에어팟은 인터넷에 연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활성화 잠금을 걸 수가 없고, 경고가 최선의 방법이다. 더 안타깝게도 안드로이드에서 연결하면 이 경고조차 뜨지 않는다.

lost112에 등록한 내역
lost112에 등록한 내역
대전시 버스업체에 전화한 내역
대전시 버스업체에 전화한 내역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분실물 신고센터 lost112에도 등록하고, 버스 안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중)이기 때문에 버스 운수업체에도 전화를 해봤던 친구였지만 접수된 분실물이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나의 찾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진짜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잃어버린 장소에 아직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면 잃어버린 기기가 UWB를 지원한다는 가정 하에 정밀 찾기를 시도해볼 수라도 있는데, 접수된 분실물이 없다는 건 버스에 없다는, 즉 버스에서 분실한 게 맞다고 해도 누가 이미 가져간 상태라는 뜻일 것이다.

나의 찾기 활성화 업데이트까지..

그러다가 2025년 2월 21일 (미국 시간 기준)에 iOS 18.4 개발자 베타 1이 올라왔다. 달라진 점은 딱 하나, 나의 찾기 부분 활성화 업데이트였다.

정작 주변 기기 추적이 불가능한 업데이트
정작 주변 기기 추적이 불가능한 업데이트

문제는 이 버전은 에어태그, 에어팟 등 인터넷 연결이 애시당초 불가능한 기기들의 위치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모든 애플 기기는 별도로 나의 찾기 네트워크 참여를 해제하지 않는 한 주기적으로 BLE 신호를 발산하는데, 왜 이렇게 불안정하게 풀렸는지는 다소 의문이었다.

친구도 서브용 아이패드에 급하게 베타를 올려서 확인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발견된 위치 없음’이라는 허무한 안내뿐이었다. 3월 3일에 올라온 Developer Beta 2에서도 별다른 진척 사항은 없었다.

Developer Beta 3에서 드디어 완전히 풀린 나의 찾기 네트워크
Developer Beta 3에서 드디어 완전히 풀린 나의 찾기 네트워크

그러다 3월 10일 (역시 미국 시간 기준)에 올라온 Developer Beta 3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판 아이폰 (모델명이 KH/A로 끝나는)에서도 해외판 기기처럼 모든 기기의 국내 위치 찾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아무도 안 보겠지만 굳이 첨언하자면 카카오톡에서 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나의 찾기 네트워크를 대한민국에서도 사용 가능하게 하기 위해 거의 필사의 노력을 다한, 열사라고 부르기 전혀 아깝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튼, 여러 애플 기기 사용자로부터 확인을 받았으니..

기쁜 소식
기쁜 소식

새벽에 깨서 소식을 전해주고 친구가 깨서 이걸 보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다. 그런데..

진짜 뜬다!
진짜 뜬다!

몇시간쯤 후에 친구가 이런 사진을 보내왔다. 진짜로 잃어버린 에어팟이 나의 찾기에 뜨고 있었고, 위치는 대전의 어느 아파트였다. 이제 정밀 찾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테스트해볼 차례였다.

목표 사전 탐색

UWB 성능 테스트 중
UWB 성능 테스트 중

일단 돌아오는 토요일에 같이 가기로 약속을 잡고, 나한테도 에어팟 프로2가 있었기 때문에, 이 기기를 정밀찾기했을 때 어디서부터 추적이 가능해지냐를 테스트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테스트 결과, Directions에서 Find Nearby (정밀찾기)로 바뀌려면 최소 20m 정도는 기기에 접근한 상태여야 했다. 실제로는 장애물, 층수 등 변수가 매우 많을 것이기 때문에 BLE 신호를 잡을 수 있는 거리는 매우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사진에는 UWB 신호라고 했는데, BLE 신호라고 보는 게 맞다.

실제 UWB에서 거리가 뜨는 기준점
실제 UWB에서 거리가 뜨는 기준점

20미터 정도에서 Find Nearby를 실행해도 신호가 잡히진 않는다. 신호가 잡히려면 일반적인 가정집을 예로 들어 바로 윗집, 또는 바로 아랫집 정도까지 가야 ‘멀리 있음’ 정도만 뜬다. 거기서 범위를 서서히 좁혀가다 보면 이렇게 미터 수까지 뜨기 시작한다.

방향 표시
방향 표시

그러다 UWB 신호를 서로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상태가 되면 방향까지 같이 표시된다. 여기서 신기했던 점이, ‘멀리 있음’ 상태에서도 원격으로 소리 재생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리 재생 시 크기

그리고 그 소리는 거의 7~8미터 밖에서도 이렇게 들릴 정도로 크다.

또한 분실된 에어팟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떤 기기를 사용하고 있느냐도 문제였다. 만약 최초로 에어팟을 습득한 사람이 그냥 팔아버려서, 그걸 산 사람으로부터 되찾아와야 하는 상황이면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산 사람은 그게 장물인 줄 몰랐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게 입증되면 산 사람이 지불했던 가격을 그대로 주고 가져와야 한다.

생각을 해보면, 애플 기기는 분실 표시된 주변기기에 연결하는 그 즉시 원래 소유자가 위치를 볼 수 있다는 문구를 포함해 사방팔방 경고를 쏴댄다. 애플 기기를 소유하고 있다면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애플 기기는 아닐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기기를 소유한 사람이 굳이 에어팟을 중고로 살 이유도 없다. 그냥 음악’만’ 들을 목적이면 에어팟을 들고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에어팟은 애플 기기에서만 100% 완전한 생태계를 보장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기기, 특히 갤럭시 기기라면 그냥 갤럭시 버즈를 들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따라서 이 에어팟을 현재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안드로이드 사용자이며, 에어팟을 최초 습득한 사람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이제 어디를 탐색해야 하는지 대충 각이 잡혔다. 문제는, 아파트를 비롯하여 남의 주거지에 함부로 들어가게 될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경우 해당 호수에만 안 들어가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복도 또한 ‘주거’로 본 사례가 있어 경비실의 동의를 받고 진행하기로 했다.

약속의 그날

KTX를 타러 가요
KTX를 타러 가요

약속의 토요일, KTX를 타러 은은한 똥냄새가 풍기는 오송역에 도착했다. 목적지가 다소 외진 곳에 있어 서대전역에서 내리고도 한참을 갔다.

정밀 찾기가 표시된다
정밀 찾기가 표시된다

해당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의 휴대폰에 뜬 나의 찾기 앱에서는 거짓말처럼 마지막 위치 전송 시간이 ‘지금’으로 바뀌고 정밀 찾기 메뉴가 활성화됐다. 가짜 위치가 아니었고, 올바른 BLE 신호를 잡았다는 의미다. 외곽을 한참 돌았지만 ‘멀리 있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는데, 이는 곧 집 안에 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제 동의를 받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해당 아파트는 별도의 경비실이 없어서 도저히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들어가서 호수까지만 특정하고 바로 나와 경찰을 부르기로 했다.

UWB 신호를 잡은 모습
UWB 신호를 잡은 모습

친구가 혼자 들어가서 층을 올라가다가 UWB 신호를 잡았다. 사실 바로 위에 실험 결과를 참조해보면, 층을 올라가다가 잡힌 거라 쭉 올라갔으면 됐을 건데 그때 당시에는 미처 생각을 못하고 다른 라인까지 올라가봤다.

그렇게 다른 라인을 찾아보다가 문득 그 실험 결과가 생각이 나서 원래 찾던 곳으로 같이 복귀했다. 한 층 더 위로 올라가니 역시 ‘멀리 있음’ 결과가 유지되었고, 두 호수 중 한 곳만 남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소리 울리기를 시도해보니..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실험하면서 들었던 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호수 특정까지 끝났지만,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력으로 돌려받으려고 했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즉시 내려가서 친구가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내가 걸었었는데, 호수를 특정했다는 얘기를 해도 되나 몰라서 빼고 얘기했다가 장소가 정확히 특정이 안 되면 모든 호수를 다 뒤져봐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다는 답변을 듣고 친구가 다시 전화해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만나러 옵니다
지금 만나러 옵니다

신고 후 경찰차가 왔고, 친구가 상황 설명을 한 후 lost112 신고 내역, 원 소유자가 맞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나서 출동한 경찰관 분들과 같이 문제의 호수로 올라갔다.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호수 문이 열리자마자 사운드 재생을 계속 시도했고, 분명히 호수 안에서도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나의 찾기 앱에서는 미터 단위로 위치가 나왔다. 습득한 사람이 그대로 집에 두고 있던 게 맞았고, 이로써 친구의 에어팟은 거의 55일 만에 친구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걸 습득한 사람이 누군지, 왜 그걸 집에다 놔둔 건지, 찾은 건 찾은 거고 어떻게 처리될 예정인지 등 기타 자세한 내용은 현장에서 다 듣긴 했으나, 당사자인 친구가 다른 커뮤니티에 별도로 올린 글에서도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여기에 쓸 수 있는 사항은 아마 아닐 것 같다.

마무리

성심광역시 대전지부
성심광역시 대전지부

어쨌든 나의 찾기 관련된 건 해결됐고, 다시 올 일이 거의 없을 대전에 왔으니 필수코스인 성심당에 갔다. 주말에 본점에 갔다가는 인파에 깔릴 것 같아 롯데백화점으로 우회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 뭐함?
그래서 이제 뭐함?

나의 찾기에서 뜨는 그 근방을 죄다 뒤져볼 생각으로 왔는데.. 어떻게 된 게 2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여기서 뭔가 더 할 것도 없기 때문에 대전에서 다시 집으로 왔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이미 2달 가까이 지나버려서 점유이탈물횡령 아니면 절도가 적용이 될 텐데, 유감스럽게도 둘 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 및 송치가 가능하다. 정말 악의적인 수준이 아니면 불송치 또는 기소유예 정도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내가 신경쓸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튼,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운 경우 향해야 할 곳은 집이 아니라 파출소/지구대/경찰서 또는 관할 분실물 신고센터이다. 선의로 취득했다고 한들 2달이 넘게 가져다주지 않고 있으면 좀 문제가 된다.

놀랍게도 나의 찾기가 베타에서만 열렸는데 오늘 친구의 케이스를 포함해 내가 본 것만 3건의 활용 사례가 나왔다. 봄이 되고 18.4가 릴리즈됨과 동시에 제한이 다 풀릴 경우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모르겠다. 레이드 같은 게 열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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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흘러가듯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반뭉자

오늘 점심은 FiLo’s Den입니다 모두맛아~~~

방문자

혹시 첫번째 사진에서 쓰인 카톡 테마나 프로그램 이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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