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아이돌을 수호하라 — 굴포차와 6인의 도적

가슴이 웅장해지는 일들이 자꾸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이세계아이돌 레이드의 시작

2023년 1월 18일, 오마이푸드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33년 내공 굴포차에 오픈런한 동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날 때까지도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2~3만 남짓이었다.

방송 컨텐츠로 올라온 글
방송 컨텐츠로 올라온 글

해당 영상이 업로드된 지 정확히 2년이 지난 2025년 1월 18일, 누군가가 “우왁굳”이라는 방송인의 공식 팬 카페에 이를 업로드했다. 해당 영상에 목소리로 출연해서 싱굴벙굴 굴을 까먹는 일부 인원들이, 이 방송인이 만든 버츄얼 유튜버 “이세계아이돌”의 멤버 중 일부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내용과 함께.

이때까지만 해도 두 달 즈음 뒤에 벌어질 일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듯하지만 아무튼, 당사자들은 자기들이 보기에도 신기하다면서 하하호호 웃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2025년 3월 22일 즈음,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상이 다시 파묘되면서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4월 1일 기준으로 나무위키 실시간 검색어에 관련 내용이 3일째 상위권에서 안 내려가고 있다. 요즘 팍팍한 국면에 도파민을 채워줄 키워드여서였을까?

제발
제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지금까지 인방 자체를 본 적이 거의 없을 뿐더러, 버츄얼 유튜버라고 하는 문화 자체를 아직까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이 글은 이 떡밥이 가져온 다른 100년산 산삼들을 흥미롭게 지켜본 입장에서 쓰는 것일 뿐이다.

고소…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최초로 떡밥이 흘러가게 된 “저 영상 속 인물들이 정말로 이세계아이돌 멤버들인가?”의 여부는, 아직까지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찜찜한 부분이 많지만 당사자들이 부정했는데 아니지 않을까? 물론 이제 그건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역대 최악의 팬덤

커뮤니티 장악 및 도배

GTFO
GTFO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점화되기 이전부터 디시인사이드와 아카라이브 등 비회원의 활동을 허용하는 서브컬쳐 커뮤니티에서는 유독 공통적으로 언급을 막아왔던 키워드가 있었다.

“버튜버”, “버츄얼 유튜버” 등이 그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게 언급만 됐다 하면 그날로 해당 커뮤니티에는 지옥문이 열렸다. 심지어 그 중에서도 이세계아이돌에 대한 단어들이 가장 단속 수위가 높았다.

살려다오
살려다오

유독 그 스트리머들만 언급되면 흔히 얘기하는 “갈드컵”의 수위가 더욱 강해졌을 뿐더러, 위 사진처럼 이세계아이돌이 광고를 받거나, 뭔가 관련된 일이 있는 게임/주제를 다루는 갤러리에는 높은 확률로 도배기가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굴려다오
굴려다오

이 굴포차 사건을 가장 먼저 문 곳은 싱글벙글 지구촌 마이너 갤러리라는 곳이었는데, 온갖 떡밥과 사건 사고를 서로 공유하고, 떡밥이 빠르게 돌아가는 특성 상 이 굴포차 사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면 그대로 묻힐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3월 25일 해당 갤러리에서 이세계아이돌 굴포차 떡밥을 물자마자 도배기가 돌아가버렸고, 빡친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쏟아낸 글들이 디시인사이드 실시간 베스트에 대거 등재되며 떡밥 확산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파묘”가 시작된 게 그쯤부터였으니 아마 도배기를 돌린 사람은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도배기라는 게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 물건인가 싶지만, 디시인사이드의 글쓰기 시스템 구조는 꽤 이상하게 되어있는 데다 자체 캡챠도 달려있어서 단순 웹 크롤링에 사용되는 기술 정도로는 파훼할 수 없다.

심지어 글에 넣을 문자 정도는 프로그래머가 알아서 지정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돌아갔던 도배 글들의 문자들은 하나같이 유니코드 테이블에서 아무거나 뽑아서 던지거나, 한자를 마구잡이로 섞는 형태였던지라 이전부터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짓이라는 합리적 추정들이 돌고 있었다.

이세계아이돌 빙의

나는 애플 주식이 없다. 애플 기기는 가지고 있는데 주식은 어쨌든 없다. 그래서 어디 가서 애플 자랑을 하지 않는다. 아이폰이 1억대가 팔렸건, 주가가 40달러 범핑이 됐건, 나는 애플 임원도, 직원도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이유가 없다. 주식을 좀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 수익 자랑은 했을 수도 있겠다.

팬덤도 똑같다. 어떤 아이돌이1 낸 음반이 차트 1위를 했건, 어떤 게임의 광고를 받았건, 도쿄돔에 가건, 그건 그 아이돌이 세운 업적이지 그 아이돌을 빠는 팬덤이 세운 업적이라고 하는 제정신 박힌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팬심으로, 잘했다고 축하 정도를 해줄 수는 있겠으나, 마치 내가 달성한 업적처럼 자랑할 일은 아니다. 하등 관계없는 타 커뮤니티에 가서 도배하고 소리지르고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참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그런데 그 하지 말라는 짓을 꼭 한다. 물론 방송인으로서 잘 나가는 건 대단한 일일 것이나, 그걸 다른 스트리머와 견주면서 깎아내리는 게 정상인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기습시위 진압 현장
기습시위 진압 현장

게임 관련 갤러리에서도 단순히 이세계아이돌이 그 게임 광고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침공해서 방송 떡밥을 굴리다가 이렇게 됐다. 왜 이러는 걸까?

만인에 대한 투쟁

무공훈장
무공훈장
아프리카를 보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우왁굳 공식 팬카페 회원
아프리카를 보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우왁굳 공식 팬카페 회원
그러게.. 왜 보는 거니?
그러게.. 왜 보는 거니?

놀랍게도 이게 팬덤의 평균 수준이다. 만인을 적으로 돌리고,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한다.

고척돔에서 뭘 하는지도 나는 몰랐는데
고척돔에서 뭘 하는지도 나는 몰랐는데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저격이 아닙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저격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자기들이 고척돔에 가는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예전 논란들을 파묘해온다”고 진지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일단 거기 가서 직접 춤을 추는 게 아니면 “간다”고 하기도 뭐할뿐더러, 솔직히 내가 볼 땐 그냥 가감없이 딱 이렇게 보인다. 이걸 부러워해야 정상인인 걸까?

나무위키 여론 통제

나무위키의 수준높은 토론
나무위키의 수준높은 토론

뭔가 정보를 찾으려면 원래는 관련된 공신력있는 뉴스 기사, 논문, 원문 등을 찾아봐야 하지만, 이런 정보들을 한데 모아놓고 제공하는 위키 사이트의 등장 이후 요새는 죄다 위키부터 뒤져보는 추세다. 한국에서는 나무위키가 제일 유명하다.

그런데 이 나무위키에서 이세계아이돌의 논란 및 사건사고, 방송인 우왁굳의 논란 및 사건사고 관련한 내용은 지난 몇 년간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끽해야 도저히 반박이 불가능한 군적금 관련 발언 정도나 각 멤버들의 별도 문서에 간신히 서술되었을 뿐, 팬덤의 사건사고나 그룹 자체에 대한 논란을 다루는 부분은 그동안 등재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우리는요
아니 우리는요

그 이유를 찾아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핑계는 “팬덤의 사건사고를 적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건사고 문서를 별도로 만들어서까지 쓸 논란이 아니다”인데.. 위 두 악성 팬덤이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즐거운 위키 생활"
“즐거운 위키 생활”

그러다 굴포차 논란 이후 핵폭탄이 여러 개 파묘되며 발제된 토론에서, 드디어 하위 문서를 생성하여 다루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 이후 해당 문서 (이파리/논란 및 사건 사고)는 줄곧 나무위키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서 내려가지 않는 중이다. 문서를 찾아가서 보면 알겠지만,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등재를 막으려고 했는가 이해가 가는 대목들이 좀 있다.

노노제팬

뭐라고요?
뭐라고요?

오타가 아니다. “왁물원 (공식 팬카페) 밖의 팬은 내 팬이 아니다”를 뜻하는 말이다.

옥스포드 영어사전도 이세계아이돌의 안티인가요?
옥스포드 영어사전도 이세계아이돌의 안티인가요?

“팬”이라는 건 공식/비공식 팬 커뮤니티에 있는지의 여부로 갈릴 수는 있어도,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데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고 팬이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단어이다. 하물며 “팬덤”은 어떠한 대상의 팬들이 모이기만 하면 성립하는 것으로, 공식/비공식으로 갈릴 수는 있어도 가/부로 갈릴 수는 없는 개념이다.

세계관 최강자들의 대결
세계관 최강자들의 대결

내가 아이폰, 애플워치, 아이맥, 맥북, 에어팟, 비전 프로, 애플 TV, 아이패드, 홈팟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내가 부정해도, 애플에서 부정해도,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애플 팬”이자 “애플 팬덤의 일원”이다. 내가 부정한다고 그 가/부가 결정될 수 있는 개념조차 아니다.

뉴스기사 말미에 들어갈 법한 매드무비
뉴스기사 말미에 들어갈 법한 매드무비

아 물론, 정말 주장하는 대로 악성 팬의 분탕질일 수는 있다. 이세계아이돌이라고 해서 악성 팬/팬덤이 없을 수는 없고, 팬덤에서 관련한 사건사고가 나오지 않게 틀어막는 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팬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딱 한 가지를 이세계아이돌 팬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한 일부 분탕들의 행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자정작용 시도, 관리 시도이다.

여기에 써내려가기 좀 많이 역겨워서 무슨 내용인지는 적지 않겠는데, 나무위키에 생성된 사건사고 문서 중 문단 2.1.1, 2.1.2, 2.1.3이 그것이다. 그런 댓글이 7000여개의 추천을 받을 동안 공식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임에도 아무도 지적하거나 관리하려는 노력조차 없었던 것과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 명확하게 팬덤이라고 기재한 닉네임에 대해서도 아무도 그게 누군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심연 팬덤”이라면서 두둔했던 것 등, 정상적인 팬덤 문화에서 나타날 수 없는 현상들이 많이 보인다.

“몰랐는데, 내 팬 아닌데”는 변명이 될 수 없다. 범죄근절 정책을 만들든 말든, 공익광고가 나가든 말든, 경찰이 있든 말든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은 저지른다. 그런데도 그런 공익광고나 정책을 중단하고, 경찰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정상인은 아무도 없다. 직접적으로 관리가 불가능한 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라도 그러지 말라고 꾸준히 계도하고 노력을 다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계도되기 마련이다.

제쳐놓고 봐도 “내 팬이 아니다”는 말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말조차 아니다. 피해자가 “네 팬 아닌 거 아니까 괜찮다”고 할 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애는 그럴 수 있지만, 니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잘-못-했-음
잘-못-했-음

“잘못했음” 네 마디를 못한 대가로 이세계아이돌이 낸 음반에 대한 저작권 논란까지 터져버려서 아마 당분간은 잡음이 좀 있겠으나, 버츄얼 유튜버 자체가 초 음지 문화이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고, 없고,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견 이 미친 새끼들
지구견 이 미친 새끼들

그러나 팬덤의 경우에는… 제발 좀, 빨 거면 니들끼리만 빨아라. 하등 관련없는 다른 커뮤니티에까지 들이밀지 좀 말아줬으면 한다.

  1. 재미있는 사실이지만 이세계아이돌은 이름이랑 다르게 심지어 아이돌조차 아니다. 패러블엔터테인먼트와 MCN 계약을 맺은 개인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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