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정신의 방

UPS 송장이 떴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문제는 쿠팡 로켓배송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게 UPS식 기강잡기는 정신에 해롭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모두 한국 표준시 (UTC+9) 기준이고, 9월 20일에 정저우에서 아이폰이 출하됐다. 이후 이 아이폰은 뜻밖에도 인천으로 오게 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으로 가기 전에 경유하는 장소 중 하나인 듯했다. 보통 정저우 → 인천 (안 들릴 수도 있음) → 앵커리지 → 루이빌 → 지역 액세스 포인트 → 최종 배송지 루트라고 한다.

9월 22일 오전 7시 즈음에 장비 관련 문제 (나중에 알고 보니 인천공항 시스템 쪽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같다.)로 딜레이가 뜨더니 오후 5시 4분 즈음에 뜬금없이 대만에 도착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뒤로 40분쯤 지나서 갑자기 인천에서 출발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아이폰이 분할배송이 되는 품목이었나? 시간여행자도 아니고 트래킹이 왜 이렇게 찍히지? 생각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UPS 트래킹 페이지만 들여다봤다.

다행히 전산 상으로 그냥 늦게 찍힌 것인 듯했다. 23일에 대만에서 다시 출발하더니 7시간만에 앵커리지를 들렸다가, UPS 허브가 있는 루이빌에 안착했다고 타임라인이 떴다. 이제 루이빌에서 분류 작업을 거친 후 각 지역의 액세스 포인트로 발송될 차례이다.

그렇게 루이빌에서 다시 출발한 택배는 갑자기 악천후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을 하더니 별탈없이 오레곤으로 갔다. 여기서 처리를 뭔가 한 번 더 하는데 아마 지역 총괄 지점에서 지역 액세스 포인트로 이동하는 과정인 듯하다.

배송 완료

오레곤에서 한 번 더 처리를 하던 아이폰은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전 12시 48분 배달 차량에 적재됐고, 약 3시간 후에 드디어 배송대행지로 배달이 완료되었다.

배달이 완료되면 UPS에서는 이렇게 수취인의 서명과 사진이 있는 배송 확인서를 발급해준다. 사진은 없을 수도 있으나 UPS에서는 애플 제품을 도난 위험이 매우 높은 물품들로 보기 때문에 수취인의 서명은 반드시 적혀있다. 내 아이폰은 ky라는 사람이 받았다. 도크에 놨다는데 이건 아마 이 배대지에 한 번에 뭐가 많이 와서 대량으로 처리한 게 아닌가 싶다.

이 과정을 새벽에 깨서 계속 보고 있었기에 배달이 완료되었는데 왜 배대지에서 입고됐다는 문자가 안 오는지 또 20분 정도를 벌벌 떨었다. 실제로 배대지에 가야 할 게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오배송되는 경우도 있고, 한국이 자전거 빼고는 안 훔쳐가는 나라라지만(요즘은 또 다른 것 같다.) 저기는 미국이라 도둑맞았을 가능성까지 생각하면서 불안한 20분을 보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몇 분 정도 더 기다리니 입고 및 배송료 책정 완료 안내 문자가 왔다. 24$라는 가격은 좀 비싸지만 이 업체는 DHL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받을 수 있어 아깝지는 않은 돈이다. 배송료를 바로 결제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자 비행기를 타려면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2시까지 결제를 완료했어야 했기에, 애초에 오늘 새벽 3시 55분에 도착한 내 아이폰은 내일, 그러니까 목요일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내가 사는 곳은 DHL 직배송 가능 지역이기도 하고, DHL을 사용하면 통관까지 DHL이 직접 해버리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