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얘기하자면 DHL은 생각한 만큼 빨랐다.
힘차게 달려라 특송업체 DHL

9월 26일 새벽 2시에 DHL 직원이 택배를 접수한 이후로, 내 아이폰은 26일을 넘어 27일까지 도저히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진상만 안 부린다는 전제 하에 뭔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으면 혼자 애태우지 말고 고객 센터에 전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전화 안 하면 계속 혼자 애태우는 거밖에 방법이 없다.
다만 DHL 고객센터는 말로는 24시간 운영이라고 하는데 실제론 평일 08시 ~ 20시, 토요일 08시 ~ 16시까지만 운영한다. 전화하기로 결정했을 때가 27일 새벽 5시였는데 흘러나오는 ‘영업시간 아님’ 안내문에 진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좀 기다렸다가 다시 연결이 됐고, 상담사 말로는 수출입 절차 관련해서 잠시 문제가 있었고, 지금은 해결되었으니 곧 트래킹에 뜰 거라고 했다. 내 소중한 아이폰을 긴급으로 재분류 및 모니터링해주겠다는 말도 들었는데 진위 여부는 모르겠다. 어떤 정도의 서비스를 받을 걸 예상하고 돈을 낸 거긴 하지만 사실이라면 매우 고마운 업체가 아닐 수 없다.

전화를 끊고 얼마 있으니 정말 트래킹이 잡히기 시작했다. 오레곤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 스케줄이 없는 모양인지 내 아이폰은 PDX를 놔두고 시애틀로 갔다.
iPhone in Ohio

그런데 시애틀로 멀쩡히 가던 택배가 시애틀을 찍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공항으로 갔다. 포틀랜드에서 시애틀, 그리고 신시내티의 거리가 어떻게 되냐면..

이렇다. 왜 이렇게 갔는지는 모르겠다.

DHL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받아볼 아이폰에는 문제가 생길 거 같아서 좀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행히 신시내티 허브에서 다시 목적지로 발송되었다고 한다. 내 아이폰은 이제 인천공항으로 올 것이기 때문에, 언제쯤 오는지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항공편 찾아보기

인천공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화물 항공기의 인천공항 도착 스케줄을 알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 9월 27일에 오하이오에서 발송됐고 DHL이면 보통 28일에 오기 때문에 28일로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추 오하이오 – 인천 시간 따져보면 들어맞는 시간에 도착하는 항공기가 하나 있다.
DHL인데 왜 폴라에어카고인지 의아할 수 있겠으나 폴라에어카고는 DHL의 자회사이다. DHL 자체에도 전용 수송기가 있긴 한데 이렇게 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아무튼 PO947이라는 편명을 알았으니 이제..

Flightrader 같은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된다. 희한하게 신시내티에서 출발해서 또 앵커리지를 찍고 오는 항공편이다.
관부가세 납부하기
항공편에서 내린 내 아이폰은 이제 미화 200달러 이상이기 때문에 수입심사를 받아야 한다. 한미FTA에 따라 스마트폰의 관세는 0%이다. 하지만 부가세 10%는 납부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안 내도 되는 돈을 걷어가면 걷어갔지 내야 하는 돈을 안 걷어갈 리는 절대로 없는 나라인 관계로, 납부하라고 문자야 당연히 온다. 따라서 그때 납부해도 별 상관은 없으나 느지막히 납부하면 느지막히 받게 된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인 관계로 미리 조회를 해보려고 한다.

관세청 유니패스에서 M B/L or H B/L 선택하고, H B/L에 운송장 번호를 넣으면 통관 과정이 조회가 되는데, 이게 “수입(사용소비) 심사진행”일 때 비로소 납부해야 할 관부가세 조회가 가능해진다. 보통 은행 어플에서도 바로 조회가 가능한데, 모바일지로 애플리케이션을 따로 깔아도 된다.
아이폰 16 프로맥스 512GB의 가격은 미화 1399불이고, 부가세는 10%이니 139불이다. 다만 186260원을 미화로 환산하면 대략 142불쯤 나오는데, 이런저런 수수료가 붙은 가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카드로 납부하면 카드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계좌이체로 바로 납부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납부를 완료하면 몇십 분 정도 있다가 관세사무소에서 잘 받았다고 문자가 온다. 이 과정이 화물기에서 화물이 내리기 전에 끝났으면 DHL이라는 가정 하에 통관은 초스피드로 진행된다.

실제로 확인해보면 하기신고는 12시 18분에 했고, 14시 31분에 반입신고를 해서 2분도 안 지난 33분에 반출신고까지 끝나버렸다. 정말 돈 값을 하는 업체라고 볼 수 있겠다.
위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 나는 현재 자취 중이며 자취방 주소로는 DHL 직배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취할 주소는 본가이다.
- 토요일에 통관이 완료됐으나 DHL은 주말 및 공휴일에는 배송을 안 한다.
- 따라서 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받아볼 수 있는데 (10월 1일 화요일 – 국군의 날 임시공휴일)
- 나는 월요일과 수요일 모두 본가에 갈 수가 없다.
- 그리고 DHL은 9 to 18 배송을 하는데 그 시간에 본가에는 아무도 없다.
- 좆됐다!
요청하면 수취인 서명 없이 그냥 덩그러니 문앞에 던져놓고 가게 하는 것도 가능은 하나,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200만원짜리 물건을 그렇게 취급하도록 허락하는 사람은 어딘가 미친 게 분명하겠다.
따라서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졌는데..
직접 받으러 가자!

직접 가서 받으면 해결이 되겠다. 고 생각했다.
물론 직접 경험해보고 난 후 세상 미친 짓이라는 걸 깨달았고, 혹시 누군가가 이걸 보고 따라할 마음을 가졌다면.. 제발 하지 마라. 자차가 있으며 집에서 공항까지 편도로 30분 이내인 게 아니면 사람이 할 짓이 절대로 아니다.
아무튼 직접 수령을 신청하려면 역시 1588-0001번을 눌러 고객센터에 전화해야 한다. 갈팡질팡하다 토요일 15시 30분에 전화해버려서 처리가 안 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처리가 된다는 팔로우업 전화가 왔다. 미친 놈 상대하느라 퇴근 30분 전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을 상담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다.
공항 셔틀버스 이용하기

토요일 당일에는 일이 있어서 못 갔고, 대신 오늘인 24년 9월 29일 일요일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지랄맞게 크고 넓어서 무려 내부를 돌아다니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는데, 제1여객터미널 기준 3층 3번 게이트로 나가면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항행관제센터 (AICC)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도착한다.

그렇게 셔틀을 타고 한참 가다 보면 누가 봐도 DHL이라는 걸 광고하는 건물이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셔틀에서 내린 직후의 DHL 사무실 (사진 기준으로 왼쪽)은 물건을 받으러 가는 장소가 아니다. 거기는 DHL 직원들이 일하는 문자 그대로의 사무실이다.
그렇다고 그 건너편에 바로 있는 다른 DHL 사무실 (사진 기준으로 오른쪽)도 아니다. 거긴 물건을 보내는 곳이다. 그럼 도대체 물건을 받는 사무실은 어디 있을까?
일단 건너편에 있는, 물건을 보내는 DHL 사무실로 간 후, 거기서 그대로 좌회전해서 쭉 가다 보면 또 다른 DHL 건물이 나온다. 바로 거기가 물건을 수령하는 장소이다. 왜 이 3개 건물의 용도를 전부 알고 있는지는 창피한 관계로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물건 수령 장소로 가면 당직 직원이 수취증 작성 및 신분증을 요구한다. 운송장 번호를 포함하여 수취증을 작성하고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중 아무거나 넘겨준 뒤 기다리면 물건을 가지고 온다.

물건을 받아보고 난 후 트래킹 조회를 시도하면 결과가 이렇게 나온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언박싱

아이폰 16 프로맥스를 장장 9일만에 영접했다.

북미판임을 나타내는 코드 LL이 모델명에 아주 선명하게 박혀있다. 북미판은 소리 제한도 없어서 벨소리 설정하려다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아무튼, 이제 드디어 무음 카메라와, 듀얼 이심과,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즉시 가능한 나의 찾기를 즐길 수 있다!
비하인드

정보를 좀 찾아보려고 DHL 인천공항 게이트웨이를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했더니, 오늘로부터 정확하게 1년 전인 23년 9월 29일에 누군가가 아이폰 15 프로맥스를 직접 수령하러 방문한 기록이 있었다.
어떻게 딱 1년 전에 이런 미친 짓을 먼저 한 사람이 있는지.. 처음에 보고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아이폰의 의지가 이어진 듯하다.